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 중에 12명을 사도로 세우신 일과 평지에서 말씀을 전하신 일에 대해서 증거 합니다. 12-16절이 제자 중에 12명을 사도로 세우신 일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2-16)
오늘 본문은 ‘이 때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본문의 ‘이 때에’는 예수님에 대한 반대가 점점 고조되고 있을 때입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이렇게 증거 합니다.
(12)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반대자들의 위협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도, 기도하시기 위해서 산으로 향하셨습니다. 이 기도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함께 사역하고, 당신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당신의 뒤를 이어서 생명의 일을 이어갈 사도들을 선택하시게 됩니다.
누가복음의 특징 중의 하나는 ‘기도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를 사도로 부르시는 장면은 복음서에 모두 전하지만, 기도하시고 택하셨다는 것은 누가복음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셔서 그렇게 기도하셨다면, 우리 역시 기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신실하게 살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치고, 기도가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의 성숙은 기도의 깊이와 넓이와 정비례합니다.
기도하는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 후에 제자 중에서 열두 명을 불러서 그들을 ‘사도’라고 칭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중에서’ 열둘을 택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들이 열두 명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상당수의 남자와 여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따를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 해도 큰 복입니다. 그중에서 열두 명으로 택함을 받은 것은 말할 수 없는 은총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게 되고, 주님께 쓰임을 받는 것은 정말 큰 은총입니다.
그 열두 명의 이름이 이러합니다.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하나같이 자격 없는 사람을 제자로 삼으시는 주님의 부르심은 참 신비합니다.
우리가 사도라고 할 때, 그 이름이 주는 권위로 인해 남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관을 가지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평범하다 못해 참으로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당신의 뜻을 따라 사람을 세우시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제자에 걸맞게 하시는 것입니다.
신자됨의 자긍심은 좋지만, 자만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자격 없는 자를 부르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온전히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17-26절)
17-26절은 평지수훈이라고 불리는 부분입니다. 내용은 4복과 4화를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5:1-12에는 ‘8복’이 기록된 반면, 오늘 본문 17-26절에는 ‘4복과 4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7-19)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고, 부요한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함’과 ‘부요함’은 단지 물질의 많고 적음을 표현하는 말은 아닙니다. 욥도 부자였고,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다윗도 부자였고, 예수님께 무덤을 제공한 아리마대 요셉도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신실한 통로였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자’는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소유’를 자신의 힘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자신의 나라, 자신의 제국’을 누리려고 합니다.
동일하게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만을 자기 힘으로 삼는 사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21上)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25上)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주린 사람’은 가난한 사람처럼, 단지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 채울 수 없음을 알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주린 사람이 얻는 복이 ‘배부름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이 문장은 수동태입니다. 즉 자기 스스로 자기 배를 부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이 배부르게 해 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외부의 힘_하나님’만이 배부르게 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배부른 사람’도 어떤 사람인지 자명해집니다. 배부른 사람이란, 단지 음식을 많이 먹은 상태에 있거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재물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없어도 자기 인생을 자기 혼자서도 잘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힘만으로도 인생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주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믿음이란 ‘하나님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세속적 가치관으로 만족할 것인가’의 싸움입니다.
(21b)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5b)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우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죄에 대한 울음입니다.
자신에게는 도저히 소망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고, 자기 속에는 결코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웃는 사람’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인생을 의미 있게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의 능력으로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런 사람은 마지막 때에 영원한 울음을 쏟아 내게 될 것입니다.
(22-23)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얻을 수 없으니까 과욕을 부리지 말라고 주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라면, 이 말씀은 처세술일 수는 있어도, 진리는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진리를 행하다가 고난을 받게 되면 그것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바르고, 진실하게 살면 세상 사람들이 박수를 쳐 주기보다, 시기하고 반대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은 동일하게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일터와 학교를 오가는 것도 같고, 가정생활 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을 자기 힘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중에서 열둘을 사도도 부르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부활의 증인으로, 하나님 나라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삶을 신실하게 살아감으로, 복음이 2천 년 동안 이어져,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종과 사도로 살아, 오늘 하루 주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한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사도로 보낼 사람들을 제자 중에서 열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세상적으로는 부족하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시기 위해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게 부족하고 연약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주님의 통로로 삼으셨기에, 우리같이 형편없는 사람들도 불러 주심의 대상이 됨을 감사합니다.
바라옵나니,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가진 것을 힘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심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는 한없이 절망스럽지만, 우리를 영원히 배부르게 하시고, 영원히 웃게 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진리를 따라서 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비록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을 목적 삼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종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예수님께서는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후에, 제자 중에서 사도 열둘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까?
2. 예수님은 가난하고, 주리고, 울고, 박해를 당할 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은총이 삶 속에 깊이 되새겨진 때는 언제였습니까?
3.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부요하고, 배부르며, 웃고,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오류에 유혹이 된 적이 있다면, 그때는 언제이었습니까?
4. 주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가진 것을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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