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루살렘 성전 파괴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함.
이 사건은 유대 민족의 심판으로 해석되며, 이후 기독교 안에서 "하나님은 유대인을 버리셨다"는 식의 해석이 등장.
초기 교부들은 이 사건을 기독교의 정당성 증명으로 해석함.
2. 바르 코크바 반란 (AD 132–135년)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대적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로마는 이를 진압하면서 유대인 박해 강화.
이때 유대교와 기독교는 확실히 갈라섬.
→ 유대인은 정치적 반란자, 기독교는 로마에 협력하는 비유대 종교로 인식되기 시작.
이후 로마 정책에서도 기독교는 유대교와 구별되는 독자 종교로 취급됨.
3. 교부들의 반유대적 저술 (2~4세기)
교회 내부에서 유대교 전통을 배제하고, 유대인을 비난하는 설교·저술이 등장함.
※ 요한 크리소스톰의 글은 중세 이후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에 직접 인용될 정도로 영향력이 큼.
4.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후 정책적 거리두기
부활절 날짜를 유대력에서 분리(앞서 언급)
유대식 절기, 전통, 안식일을 의도적으로 폐지하고 주일과 교회력 강조
“유대적 요소는 기독교에 부적절하다”는 의식 강화
5. 중세 교회법과 차별 제도화
유대인은 교회에서 배척되어야 한다는 법령 제정
(예: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215년 – 유대인에게 별도 복장 착용 강제)
직업 제한, 주거 제한(Ghetto), 교회와의 결혼 금지 등
6. 십자군 운동 (11~13세기)
십자군이 성지로 향하면서 유럽 내 유대인 공동체를 공격하는 사건 발생
(예: 1096년 제1차 십자군 – 독일·프랑스 유대인 학살 사건)
종교적 열망이 유대인 혐오로 비화됨
7. 종교재판과 반유대 정책
스페인 종교재판에서 유대인 개종자를 ‘불순한 기독교인’으로 간주하여 처형과 추방
1492년 스페인 유대인 추방령
참고문헌
James Carroll, Constantine's Sword: The Church and the Jews
Rosemary Ruether, Faith and Fratricide: The Theological Roots of Anti-Semitism
John Gager, The Origins of Anti-Semitism
William Nicholls, Christian Antisemitism: A History of Hate